자기의 모습은 푸줏간 속에 숨겨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남몰래 세상 돌아가는 틈새를 지켜보다가 시대의 변고가 생기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려는 자는 호민豪民이다. 무릇 호민이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다. 호민은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세가 편승하기를 노리다가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저들 원민怨民들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대기 마련이다. 저들 항민恒民이란 자들도 역시 살아갈 길을 찾느라 호미·고무래·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인다. (중략) 대저 하늘이 사목司牧(임금)을 세운 것은 양민養民하기 위함이고,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메워도 차지 않는 구렁 같은 욕심을 채우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